

POLARIS
찬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는 어느 11월 끝 발쯤.
동거 한지는 오래. 하지만 나와 너라는 것은 없고 나란 존재만 있다. 이 텅 빈 방에 갇혀 있다. 아니, 그렇다고 지금 이 방이 그렇게 까지 텅 빈 방은 아니다. 있을 건 다 있는 방. 서로가 힘을 모아 살고 있는 집. 그렇지만 나만 있구나.
나는 지금 어느 영화를 보고 있다. 아니, 연극 영화인 것이 더 말이 맞을까? 아무튼, 그 영화의 이름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이자 연극을 보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이 처음 만나서는 결혼을 약속하다 죽음으로 결말을 맞이 하는 그런 내용이다. 중간 과정은 솔직히 기억은 안 난다. 어떻게 처음 만나자마자 결혼을 약속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이 들 때쯤, 예전에 연극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연극은 하나의 연극의 극이 시작하면 발단과 상승, 정점, 하강, 종결이 있다. 그걸 따지기 위해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걸 넣었다고 하면은. 조금 이해는 간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서 일 테니.
그렇다면, 우리의 연극은 어떨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셰익스피어가 우리의 연극 본다면 뭐라고 답할까? 우리들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기적적인 만남. 기적적 사랑. 애정, 싸움. 그 부가적 요소를 이끌어가면서 서로가 서로 뿐인. 서로가 극본이, 연출가, 감독 등을 하고 최고의 엔딩을 달려가고 있었다. 죽음은 택하지는 않았구나. 그러면 우리들은 그렇게 해피엔딩은 아닌가 보다.
어느 연극이 그렇듯 끝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끝은 있나 보다.
무조건적 외치던 사랑을 말했던 나와 그걸 듣고만 있던 너에게 질리기 시작한 건 사계절이 4번이 바뀔 때쯤 겨울.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연인이었던 기간이 긴 만큼 어느새 친구로서의 기간이 길어졌다. 우리는 연인이기 이전, 지금은 친구 같은 개념. 이쯤 되면 서로가 친구라고 해도 무색할. 아마도 그런 사이겠지만.
“영화 끝났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따금씩 생각에 빠진다. 우리들이 어쩌다 사랑에 빠졌던 걸까 하면서. 우리들이 만난 것은 어느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 겨울 날에 처음을 얘기 했지. 그 처음 속에서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전부 인 것 마냥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을 했지. 서로가 하는 말에 하하 호호 하면서 걸핏하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 겨울 속에서 나는 겨울의 나를 주었고 그 달콤했던 겨울이 지나 또 한 번 사랑을 말할 봄이 왔다. 그 봄 속에서도 우리는 또 한 번 사랑을 속삭였고, 여름은 서로가 얼음이라도 입에 물 정도로 더웠다. 그렇게 차가운 얼음을 ‘콰득’하고 깨물었다가 뱉어낸다. 그 여름에 우리는 뜨겁다가도 차게 식어버릴. 그런 아찔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또 얘기 했지. 사랑해 라고. 가을은 하나의 다툼으로 우리는 헤어질 뻔 한 상황이 올 뻔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이다라고 우리 서로는 화해를 한 뒤 그 살벌했던 가을 또한 사랑한다며 계절을 보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어 다시 겨울. 그 겨울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났던 그 기념일을 다시 기억 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들은 뭘 이렇게 열렬한 사랑을 했던 걸까 싶다. 우리는 우리끼리의 사랑을 증명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사랑을 속삭였지.
우리들은 그렇게 매일 같이 사랑한다고 말을 했었다. 아마도의 이야기다.
“… …계절이 또 바뀌네.”
라고 나는 중얼거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그냥 지나가면서 있었다. 지금 몇 번 째 일 까. 6번 째 쯤 인가보다. 창 밖에 있는 계절은 너를 만나 사랑을 말하는 기념일이 다가온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그마한 방에서, 남아있는 시간 속에서 처량하게 궁상을 떠가면서 있네.
나는 거의 쭈그린 채로 앉아있다가 느리게 턱을 괴었다. 또 한 번 추억이랄 것도 없는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그 추억을 되새겨 보던 중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날은 두 번째 겨울. 그 겨울 속에서 네가 사람들하고 같이 붙어있기 싫다고 한 것부터 시작이었던 거 같다. 나는 궁금했다. 그제까지는 잘 붙어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싫다는 거냐고. 바람이라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날의 너는 그저 손을 잡으면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이 내 귀에 들릴 까봐서 못 잡았다고 한다. 참 귀엽다고 느꼈다.
“지금은 잡지도 않지만.”
타르탈리아.
나지막이 이 다섯 글자의 이름을 느리게 불러 보았다. 하지만 옛날처럼 기쁘게 달려오는 소리는 안 들린다. 그냥 이렇게 꽉 차 있지만 메아리가 들리는 나의 목소리가 울린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냥 허무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부엌으로 가서는 곧바로 냉동실 문을 열어 얼음을 마구 먹었다. 그냥 손 잡히는 대로 말이다. 아무래도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아니다. 지금은 분명 겨울인데 얼음이 잘 넘어간다. 나는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걸까. 화를 억누르기 위해 얼음을 먹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 갈증 인 걸까. 그거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 알아 줘. 나는 지금 얼음을 먹어도 이 열기와 갈증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 ….”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하지만 입 안은 차가운 얼음을 물고 있었기에 그 얼음들을 다 먹었을 때쯤에서야 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힘 없는 소리. 오늘도 피곤해 하는 얼굴을 하면서 들어온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네 얼굴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왔어?’라고 말을 하면은 표정이 곧 무표정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테니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저 한숨을 쉬었다.
“타르탈리아.”
나는 아무 느낌도 없이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너는 내가 있는 것은 알고는 있나 보다. 라는 그저 놀리는 생각을 하면서 있었지만 너는 이 생각이 알리는 없는지 아무런 대답을 안 했다. 그렇지만 표정은 그저 날 응시 하면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눈빛에서도 그저 차갑게만 느껴진다. 아니, 표현은 정확히 하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냥 비즈니스 사람을 만나는 텅 빈 눈. 참으로 넌 얼음 같다. 내가 먹었던 얼음같이.
“내일 주말이니까 카페나 같이 가자. 그리고 나 데이트를 오랜만에 하고 싶어.”
“… …응. 그렇게 하자.”
너는 그제야 볼일이 끝났구나 라고 느꼈는지 그대로 기지개를 켜면서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이제 저 모습에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라는 감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할 수 있는 그냥 반복적인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졸음이 밀려왔다.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었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씻는 물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걸 자장가로 삼아 눈을 감는다.
우리 둘 괜찮았던 거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하지만 그런걸 알고 있었다면은 이런 시시한 생각은 안 했겠지. 평소대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계속 붙어 있기만 했을 것이다.
아마도.
✻
주말. 벌써 주말이 다가왔다.
오랜만의 데이트가 하고 싶어서 다짜고짜 카페에 가자고 했지만 둘 다 카페에 가기에는 정말 무안할 정도로 적당한 꾸밈이었다. 둘 다 서로 맨투맨티와 청바지 더 나아가 코트이거나 그저 점퍼였으니. 그냥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가는 것이 나을 법 했다. 하지만, 이내 네가 항상 말하던 톤으로 ‘가자. 데이트 하자며.’ 라고 말을 했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어색하게 ‘아, 응’하고 대답을 했고 그대로 길을 나섰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해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지..
카페는 지금 있는 집에서 꽤 멀리는 아니었다. 걸어서 건널목 한 번만 걸어가면 될 거리 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멀리 안 있는 카페에 가기로 한 뒤 서로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시켜 아무 말 없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있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였으면 그냥 안 나오는 것이 나았지. 정말 따분한 시간이다.
한숨만 잔뜩 쉬면서 마시다 보니 주변 커플들을 보았다. 그 커플들은 서로 같이 붙어 있고. 우리처럼 떨어져 있기 했지만 친해 보였다. 아니면, 약간 사귄 지 얼마 안된 거 같은 커플.
“… ….”
나는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다들 우리와 같지 않다는 걸. 그렇게 무언가가 순간적으로 끊어지고 나서야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다.
아, 지쳤다. 모든 것이 갑자기 피곤해져 버렸고 그 다음으로는 아무 생각 하기가 더 싫어졌다.
“… …타르탈리아.”
“응.”
“…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피곤해져 버렸으니 먼저 갈게.”
나는 도망 가듯이 일어나 마시고 있던 커피는 테이크아웃을 하고서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인간 관계는 순리가 어긋나지 않는 이상은 나와 관계 된 모든 관계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족 관계, 친구 관계, 비즈니스 관계, 연인관계 등등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관계는 뭐라고 정의 하는 것이 좋을까. 연인? 하지만 그와의 추억 들 중에서 좋았던 기억은 그다지 생각은 안 난다. 친구 관계? 글쎄. 친구 관계가 애인 관계지. 요즘 친구 같은 연인 사이도 있다잖아. 하지만 수많은 물음 속에서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무언가 스친다.
“… …우리 둘. 사랑하기는 했던가?”
한숨을 쉬면서 나는 몸을 만 채로 그대로 주저 앉았다. 그리고 하늘도 무심하게 비가 내린다. 오늘 날씨 맑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가봐.
“참으로… …개 같네.”
소매가 젖어간다. 온 몸이 젖어간다. 이번 비는 아무래도 꽤 세차게 내릴 건가 보다. 비를 맞다 보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그냥 이대로 세차게 내려서 비와 함께 쓸려 나가고 싶어진다. 비와 함께 쓸려고 흙이 되고 싶다. 묻히고 묻히다 사라져버리게.
✻
허무한 주말을 보냈다. 그 날의 주말은 둘 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어째, 나 혼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타르탈리아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바닥에서 자든가 소파에서 자든가. 내가 술 마시고 오는 날에는 친구 집에서 자든가 나 또한 침대에서 누웠던. 그런 기억 밖에 없으니까. 그런 기억 속에서 애석하게도 하는 일이 프리랜서였으니. 외롭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건 텅 비어버린 감정이니까.
“어, 전화.”
라고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 친구의 전화였고 결론적으로 오랜만에 같이 만나자는 전화였다. 원래 같으면 귀찮아서 나가지도 않겠지만 나는 그냥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알겠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씻고 나갈 채비를 한 뒤 문을 잠그고 밖을 나갔다. 사람이 한 번씩은 햇빛을 받아놓으면 좋으니까.
꽤 빨리 도착해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간의 근황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 솔로였던 친구가 지금은 새 연인이 생겼다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래서 기뻐하면서 어디서 만났는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둘 다 첫인상이 별로 였던지라 인연이 거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다고 할 때 이상하게 보고 싶어서 몇 번 만났더니 그렇게 연인 사이로 발전 했다고 한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느낀다나 뭐라나. 운명적 사랑. 솔직히, 그거 조금 부럽긴 하네.
아니, 부러워해야 할 상황인가?
“요즘 타르탈리아랑 어때? 둘이 같이 동거도 한다면서.”
“우리… …둘 말이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딸그락’하는 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실제로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둘.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정확하게 매듭이 지어있지 않은데 훅하고 들어온 질문에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금방 화해 하고. 그렇게 근황을 나누었다.
요란스럽게 들리는 굉음들. 그 굉음의 소리는 유리는 아니어서 그런지 얼음이 쏟아지는 소리만 들린다.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걸까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싸움이 났다 보다. 그 싸움 속에서 여자는 남자의 뺨을 때렸는지 남자의 뺨은 엄청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심한 욕설들. 그 욕설 속에서도 그 남자는 고개만 떨구고 연신 미안하다고만 사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남자 쪽에서 잘못한 거 같다. 안 그러면 저렇게 맞을 일이 없을 테니 까. 하지만 이내 여자에게 들려오는 말에서 들리는 말들 중에서 하나가 내 귀에 꽂혔다.
“… …권태기.”
왜 이 말이 내 귀에 꽂혔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 상황과 저 말이 꽤 잘 맞아서 그런가 보다.
이 이어 난 같이 온 친구 존재를 잊고 있다가 정신 차렸을 때는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언제 헤어지고 어떻게 카페에서 공원까지 갔더라. 아무래도 정신이 나가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나 자신이 당황 할 리 가 없으니까. 그리고 넋이 안 나갔을 테니까.
“… …우리 둘 권태기인가.”
어느 누구도 듣지도 못할 말을 하고서 바람 때문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호숫가를 보았다. 참으로 잔잔하게 흐르는구나. 하지만 겨울 바람은 생각이상으로 차갑다. 너무 차가워서 금방이라도 상처를 입을 것처럼 그렇게 차갑게 불었다.
겨울. 우리 둘이 만났던 것도 겨울인데. 그날 겨울 바람은 차가워도 참으로 따뜻했는데. 지금은 그 겨울 바람보다 더 한 추위구나. 사실, 바람이 문제가 아니다. 낮보다 밤의 시간이 길어져서 별거 아닌 일에도 사람의 감성이 더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이 텅 비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울컥해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눈물은 안 나온다. 아이러니하다. 감정이 텅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울컥하고 감정의 바다가 쏟을 거 같으나 그것은 바다가 아닌 그냥 고여버린 물이었고 댐이라는 벽이 가로 막아서 무너지지 않게 잡고 있는 듯 했으니.
객관적인 것이 보고 싶어졌다. 타르탈리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좀 보고 싶어졌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따로 용기는 없다. 용기를 앞세워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본다? 그럴 조차도 없다. 이미 인간관계에서 많이도 지쳐버렸으니. 그냥 사람을 좀 만나 볼까 한다.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어느 누군가와 말이다.
춥다. 집에 가련다.
✻
나는 집에 오자마자 씻는 것도 대충 씻고 옷은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려다 그거는 아닌 것 같다 하면서 옷을 차곡차곡 정리를 한 뒤 침대에 늘어진 채로 있었다. 늘어진 채로 있다가 아까 생각난 단어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권태기.
너 또한 권태기 일지, 아니면 나만 그러한지 알 수는 없다. 그렇게 나 자신은 권태기 극복 방법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다. 그 여러 가지 속. ‘추억 회상’. 그 동안 우리들에게서 의문을 가지면서 추억을 회상했던 이유는 권태기를 극복 하고 싶어서 나의 몸이 무의식 적으로 한 것이구나 라는 걸 납득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권태기인 것을 알았고 나의 몸은 그걸 극복 하려고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할 거면 해라. 하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다고.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넘기기엔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냐 하면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주변 말들 들어보면 그저 일에 미쳐 있는 남자인데 바람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나를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이지만, 나와 헤어진다고 하여도 이 남자의 태도는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결국은 내가 먼저 이별 준비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이별 준비를 한 뒤 모든 미련이 다 털어지면 그때 헤어지는 걸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자비이자 기회였다. 누구를 위한 자비와 기회인가. 물론, 전부 나겠지만. 나를 위한 것.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 ….”
이별 준비.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사실, 이별 준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누구는 그냥 충동적으로 이별을 고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누군가는 착실하게 계획을 세워 이별을 고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던데 나는 계획 세워서 이별을 고할 것도, 충동적으로 이별을 고할 생각도 아예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픈 마음이 더 큰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미 권태기는 사실상 폭탄이다. 길고 긴 폭탄 심지가 어쩌면 그간의 추억이고 폭탄이 이별이라는 것이니까. 결국은 권태기는 그 심지로 인해 터질 준비의 카운트 다운. 그 카운트 다운의 비운은 급작스럽게 터지는 거고. 그래도 아직은 터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말이다.
얘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도 아주 잠시 뿐이다. 아주 이성적인 사고력이 나에게 의미 없는 가정만 넌지시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잘 생각해봐. 과연 얘기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아니, 잘 맞는 말이다. 진작에 얘기를 했다면. 이럴 배짱이 만약에라도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생각은 많아져도 그 사이에서 쓸모도 없고 우울해지는 생각들만 자꾸만 떠올라 그냥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해 잠시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 보았다.
권태기인가? 권태기다.
헤어지고 싶은가? 그렇게 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허무할 뿐이다.
사랑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으면서 못하는 이유는 무엇 인가.
“… …미련이지 뭐.”
라며 중얼거리면서 있었다. 아, 이게 정답이구나. 권태기면서 계속 수동적인 행동만 하는 것이 전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함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밀려오는 피로감. 나는 무척이나 지쳤다.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약에 소설을 짓는다면 다들 타르탈리아를 욕하는 것이 아닌 나를 욕할지도 모른다. 흔히들, 너무 답답하다 혹은 고구마처럼 행동한다. 헤어질 거라면은 빨리 헤어지든가 아니면 헤어지지 말든가. 아마 그렇게도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요즘 소설들은 그렇다. 여주인공이 금방이라도 답답한 행동을 하면 속이 뚫릴게 필요하다. 여주인공이 왜 이렇게 주체적이지 못한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욕할 자격이 있다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나를 욕할 것도 없다. 자기들도 이런 권태기 상황이 온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지. 오히려 내적으로 피곤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맞겠지.
멍하게 있다가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난다. 타르탈리아가 오는 소리가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일어날 필요는 없는데 갑자기 본능이 이런가 보다.
“왔어?”
내 말을 들었는지 신발을 벗고 있다가 내 얼굴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욕실로 가버리는데 이런 일상이 참 늘 그랬다. 차라리, 저 양반이 바람이라도 피고 있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바로 나올까?
“있잖아. 타르탈리아.”
“… …왜?”
“나 사랑해?”
“… …미안 좀 씻으러 갈게. 먼저 자.”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물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씻으려는 가보다.
“하하… …”
‘먼저 자.’
이 한 마디가 내가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방금 전, 그 ‘먼저 자.’에서 끊긴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사랑하냐고 물었으면 그거에 대한 대답이 나와야지. 먼저 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걸까. 그냥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이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의 그 다음이 내 머릿속에는 없다.
✻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 그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멍하게 일어났다. 심하게 들리는 바람소리들. 나는 힘겨운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어디였더라. 아, 친구 집이구나.
그 날, 이성이 끊긴 채로 밖으로 나가서는 그대로 친구 집으로 갔구나. 나는 언제부터 화가 나면 친구 집으로 갔던 걸까. 아니면, 집이라는 공간 자체에서 더 이상 의지 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창 밖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나무들. 그런데 그 무수한 나무들 위로 싸늘하게 세워져 있는 나뭇가지들은 너무나 앙상하다. 그 앙상한 가지도 자기도 나무의 일부라고 오래도 버티고 있었다.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은 저 나뭇가지들처럼 이제 버티지를 못 할 것 같은데.
“… ….”
모든 것이 피폐하게 느끼고 마음대로 하기 싫어질 때 남들은 그런 거는 금방 이겨 낼 수 있어. 힘내. 라고 치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부가 안 되는걸. 해결책을 달란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감정에 공감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의 전부같이 있었던 네가 어느새 이렇게 싸늘하게 불고 있는 겨울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같이 ‘먼저 자’라는 한 마디가 이렇게 와장창 하고 부셔줄 줄은 누가 알았을지. 정말로 ‘먼저 자.’라는 이 한 마디에 속이 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쌓일 대로 쌓여버린 감정 소모가 그것이 폭발 해버렸고 우리는 이제 서로가 귀찮아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미련함이 그걸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철저하게. 친구가 집에 오자마자 나를 걱정했다. 그렇게 울면서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고. 그러고 나를 달랬다. 그 달래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나 꽤 많이 속이 곪아 있었구나. 곪음이 나 자체에서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자각을 해야 내가 곪아있었고 지금 그게 이제서야 터졌구나.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과 이별을 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 등등. 여러 미디어에 다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가 겪고 있으니 모든 것이 나의 환상 마냥 느껴진다. 사실, 이건 전부 소설 속의 내용이었고. 하지만, 소설 속의 내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울고 나서 보니 너무 허무 해졌다. 그 허무함 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 …다른 걸 좀 보고 싶어졌어.”
라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친구는 ‘뭐라고?’ 라고 물어보지만 나는 애써 얘기 하지 않았다. 괜스레 걱정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걱정하면 끝없이 약해지기 마련이니까. 그 약해짐이 때로는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나는 너무나도 약하다. 걱정을 받으면 더 약해진다. 그러니 공감은 공감이고 걱정은 걱정이다. 지금의 그것이 나를 나약 하게 만들 뿐이다.
친구와 헤어지면서 나는 카페에 들어가 생각에 잠시 잠겼다. 그냥 물어봤던 질문이었던 ‘나 사랑해?’라는 질문에도 너는 그냥 넘겨 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나 또한 넘어갈 일이었으니까 신경은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쌓일 대로 쌓여서 이것이 지금 한계치 이었으니까. 나는 또 물음을 던져 본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 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너도 나도 분명하게 우리는 정말 불타는 사랑 했다. 너무나 불타는 사랑을 했기에 같이 동거를 한 것 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보내 줄 때 이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훗날의 우리들은 새로이 빛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하니 그가 보고 싶어졌다. 어영부영 넘어 갈 것이 아닌 너무나 확신이다. 나는 이대로 울면서 지나가기 싫어졌으니까. 무조건적으로 주었던 내가 이제 버려야 할 차례였음을.
나는 집에 오자마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타르탈리아를 발견했다. 집에 계속 있었는지 아니면 퇴근을 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너는 나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너였는데 이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정말 미련을 놓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내 자신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타르탈리아.”
“왜?”
“우리. 시간을 좀 갖자.”
너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 오히려 고맙다면 당황하는 ‘척’이라고 해준 것이다. 당황하는 척이라도 안 했다면 그냥 거기서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말을 정리 해보려는 듯한 너의 행동이 보이자 나는 그저 숨만 짧게 내뱉었다. 그러던 중에 너는 이렇게 말을 했다. ‘응. 알았어.’ 그렇게 우리 둘이 나눌 수 있는 말이 그것뿐 이었다. 우리 둘은 지금부터 서로 남남이 되어 갈 준비를 하게 될 거다. 그게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행동인 동시에 진짜 우리 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지.
✻
집 안은 싸늘하다. 싸늘해도 너무 싸늘하다고 느낄 때 어제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시간을 갖자고 할 때 너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결국은, 내가 나가는 게 좋겠다고 느껴져 짐 챙기려고 할 때 네가 나를 끌어안았다. 차라리 자신이 나갈 테니까 너는 나가지 말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참으로 고맙지는 않다. 원래 내가 있던 집이었으니까. 너랑은 월세를 나누면서 살고 있었던 처지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면 그게 자기한테 엄청 로맨틱한 말인 줄 알겠네.
“바보 같아.”
남남이 되어가는 1일 차로 느끼는 점의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일단 쓸쓸하다. 쓸쓸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면은. 있어도 쓸쓸한 것과 없는 것의 쓸쓸함은 다르다. 그 다름의 차이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겠지. 그런데 이렇게 차이점을 얘기해도 그 다름에서 어찌하던 공통점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다지 슬프진 않다는 것이다. 시간을 가지자 했지만 결국 암묵적인 의미는 헤어지자는 의미와 갖자니까.
두 번째, 이것과 반대의 개념인 이상한 자유로움.
방금 전에 외롭다고 한 것치고는 이상하게 자유롭다.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었나? 하면은 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르탈리아와의 연애는 정말 자유로웠다. 그런데 왜 헤어진 것의 대하여 자유로움을 느끼는 걸까.
잘 모르겠다.
“… …일단, 뭐부터 하지.”
고민이라고도 뭣하지만 일단 뭐부터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해야 그 다음이 정해지니까. 그런데 뭐부터 할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내가 타르탈리아를 사귀기 전에는 뭘 했는지 의문에 빠졌다. 사귀기 전에는 무엇을 했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억이 안 난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했나?
“일단 커피부터 마시자. 일단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커피 포트에 물을 넣어 가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커피 포트. 타르탈리아랑 같이 돈을 반을 내가면서 겨우 샀던 물건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뭐든지 같이 하고 싶어했나 보다 싶다. 서로 붙어있는 것까지 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안이 너무 휑하다고 느낀다. 있을 때에 휑함과 지금 현재 없는 상태의 휑함. 아까 전, ‘쓸쓸하다’의 의미와 같아지는 것이다. 이제 하루 째인지 그립다고 느끼는 가보다 싶다. 물이 끓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한 참 걸리기에 생각할 시간이 많은 거겠지. 오히려 좋다. 그리고 갑자기 커피보단 따뜻한 차 한 잔이 더 끌렸다. 춥기도 하니까. 찻장 문을 열었다. 그 동안 내가 손대지 않은 듯한 한 묶음으로 감싸진 티 백 들이 줄지어 있었다. 차 마시는 거 좋아했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남아 버린 거지?
사실, 티 백이 남아있는 것은 중요하지는 않았다. 티 백이 남아있다면 그냥 마셔버리면 되는 일이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운 것은 나는 주변을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고 호들갑을 떨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냥 만사가 귀찮아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물을 그냥 방치했다. 만사가 다 귀찮아지니까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이별 후의 우울증이라는 것이 와서 내 몸을 갉아먹는다고 하는데. 이 어줍잖은 마음에서 우울증이라.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만 이러면 안될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어이가 없게도 순식간에 무의미한 2주가 지나갔다. 2주가 지나간 시간 동안 나는 약간 달라진 게 있다. 아니, 이걸 달라졌다고 말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억지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다. 이리 저리 돌아다녔는데 그 동안 내가 너무 한 사람만 보고 살았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나아진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침대에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았다. 짧은 낮과 긴 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시간이 지나가서 12월이 되었다.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사람도 많이 만나보았다. 엄청 많이 만났다. 헤어졌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기 위해 많이 만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 인가보다.
창문 밖을 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심하게 때린다. 꼭 들어 오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미묘하게 방 안이 싸늘하다. 한 겨울은 정말로 차갑다.
2주의 시간이 지나면서 타르탈리아를 그리워했는가 하면. 그리워하기는 했다. 이게 무슨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얼마큼 사랑을 했을까부터 시작 한 생각의 시간이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을 했단 것부터 우리 꽤 괜찮은 연인이었을지도 모르지. 덩그러니 놓여있는 핸드폰. 그 핸드폰을 들어 서슴없이 단축번호를 눌렀다. 천천히 울려져 가는 핸드폰 신호음. 사람 참 재미있게 하던 사람은 항상 신호음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재미없는 신호음이 참 재미있다. 이상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지만.
“… ….”
‘여보세요?’라고 들려오는 소리. 참으로 익숙한 너의 목소리다. 나는 이렇게 낮게 깔렸던 너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했구나 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새삼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여보 아닌데요?’라고 너에게 장난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이에 이게 무슨 장난 인가 하면서 그저 사람 숨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나는 말을 이어갔다. 잘 지냈냐 말과 함께 시간 있는지 말이다. 다행히도, 너는 이번 주말에는 쉬는 날이어서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서 같이 멀리 캠핑이나 가자고 말했다. 바람 쐬는 겸 별도 보러 가자고. 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알겠다면서 내일 가겠다고 말한다. 나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약간 긴장했다. 하지만 막상 목소리가 들려도 말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잘만 나오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 내일 타르탈리아가 온다. 마지막 시간을 위해서.
✻
주말이라는 시간은 참 빨리도 온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오겠지 라는 생각은 언제나 있었다. 시간은 어차피 그렇게 흐르는 건데 어떻게 막아.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정말, 그 동안 한번도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인데. 그리고 너의 이름이 액정화면에 뜬다. 아무래도 집 밑에 도착 했나 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느리게 일어났다. 그리고 주섬주섬 겉옷을 꺼내와 입었다. 최대한 따듯하게. 춥지 않게. 감기 걸리지 않게. 그리고 미리 싸둔 가방을 고쳐 매면서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짐을 간단하게 챙겼다. 내가 갈아입을 옷. 아니, 어쩌면 하룻밤을 안 샐 수도 있다. 그저 별만 보고 집으로 올 수 도 있다. 그게 전부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이 정리가 끝날 때쯤 확인 할거는 확인 하고 나서야 현관문을 열고 발 한걸음을 나설 때 커다란 그림자가 내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너인걸 알게 된다. 정말 새삼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막상 이 사람이 앞에 있으니 조금 놀란다. 이렇게 키가 컸던 사람이구나. 내심 반가우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지자 눈만 깜빡인다.
“… …오랜만이네.”
“… …너도.”
그렇게 아무 말도 안하고 정적만 있다가 나는 조용히 말을 했다. ‘가자.’라고. 정말로 짧고 간결하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 까. 가면 가는 거지. 내 의도를 네가 알았던 몰랐던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구나. 열심히 청소 했는데.
집 밑에 주차를 한 듯 깨끗해 보이는 너의 작은 차. 일 열심히 모아서 산 차라고 신나게 자랑을 한 네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참, 기뻐하던 얼굴이었는데. 그런 차를 보면서 나는 살짝 웃으면서 ‘너도 참 오랜만이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뒤에 타는 것이 좋겠다. 어색하게 조수석 자리에 앉는 건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지니까. 그렇게 뒤에 타기 위해 문을 열려고 할 때 잠시 너로 인해 끊겼다.
“앉지마.”
“어?”
“뒷자리는… …좀 짐이 많아.”
“… …어.”
너는 참 거짓말은 못한다.
어색하게 조수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무도 앉지는 않았는지 깨끗해 보이는 차 안. 아니면 오기 전에 청소라도 했는지. 하지만 그거는 우리 사이에서 더 이상 궁금해 할 영역은 아니다. 그런데 문득 연애 할 때가 생각이 난다. 너는 운전석, 나는 조수석. 그렇게 한 세트 마냥 자리에 앉아 어디로든 놀러도 갔다. 캠핑 갈 때나 간단히 마트 갈 때나 때론 심야 자동차 극장 갈 때도.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얘 데리고 많이도 갔지 싶다. 하지만 이렇게 앉는 것도 보는 것도 이제는 없을 것 같다.
“멀리 가고 싶다 길래. 여기서 4시간 거리에 별 잘 보인다는 곳이 있더라.”
“그래? 지금부터 4시간이면. 적어도 저녁 6시쯤 되겠네.”
“뭐, 그렇지.”
차는 움직였다. 약간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그 요란한 소리와는 차는 잘만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차가 움직인 순간부터 쭉 말이 없었다. 말이라도 건네 볼까 했지만 옛날만큼의 마음이 동하는 것은 없었다. 잘 지냈냐는 말도, 뭐하고 지내, 참 오랜만이다 등등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것은 마음이 동하냐 안 하냐의 별개로도 안부 차로 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내가 일부러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내 이런 분위기는 너라도 어색한지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보며 있었다.
“춥지는 않아?”
“어… …조금. 히터 틀어줘.”
“진작에 얘기하지.”
사실 춥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이라도 더 얘기 해보고 싶었던 거였으니까. 하지만 대화는 이게 끝이지 싶다. 나는 잠시 창가 풍경을 보았다. 우리들은 뭔가 멈춘 거 같은데 풍경들은 차의 속도 때문에 빠르게 흘러간다. 의미 없는 시간이다. 겹눈으로 네가 뭐 하는지 보았다. 네가 하고 있던 일은 히터를 틀어주고는 너 혼자 바쁜 듯 손가락을 이리 저리 움직이다 노래만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틀더니 이내 홀가분하게 있는다. 이것이 차 안에서 보는 마지막 시선. 우리가 예전과 같은 사이였다면 이런 덤벙대는 모습에도 귀엽다고 했겠지만 그다지 감정이 없다. 라디오 채널에서 나오는 음악은 꽤 잔잔하게 울린다. 하지만 감동적인 노래도 신나는 노래도 아니다. 그저 지극하게 심심한 노래. 꼭 우리 같다.
4시간을 달리다 보니 예상 시간이 6시가 아니라 7시쯤에 도착을 했다. 서로 어색하게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짐이라고 해 봤자 간이 의자와 캠핑용 탁자 마지막 담요뿐. 아무튼 이러한 짐들을 가져와 적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저녁은 서로가 생각이 없었지만 억지로 사서 가져온 것은 약간의 군것질거리들과 샌드위치. 그게 전부였다.
이럴 때만 자리를 잘 잡았다고 생각이 든다. 모닥불을 언제 피웠는지 그리고 또 언제 꺼내왔는지 모를 스피커. 그 스피커 소리에서는 적당히 들려오는 잔잔한 노래였다. 분위기 좋네. 음악을 들으면서 불멍까지 하게 되고 말이다.
장작이 타는 소리. 그 장작이 타는 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한 소리가 좋았는지 아까보다 더 한 불멍을 하면서 정신이 잠시 딴 데로 새고 있다가 지그시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렇다고 별이 꽉 차있는 것은 아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별들인데 꽤 많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저 별들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겠지.
“… …루미네.”
오랜만에 들어보는 내 이름. ‘루미네’라는 이름의 석자. 그 세 글자도 네 목소리에서 오랜만에 들어본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바로 대답은 하지는 않았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네 모습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응.’하고 대답했다.
“넌 참 저기 하늘에 별 같아. 조용하게 있었지만 그럼에도 넌 참 빛나고 있고. 그리고 그 자리에 늘 있었어. 그래서 나 또한 네 옆에 빛나고 싶었어. 계속 같이 있고 싶었어.”
“… …응.”
“사랑하냐고 물어봤잖아.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 난 널 여전히 사랑해.”
“… ….”
수줍은 고백인 것 마냥 나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참으로 너란 사람은 그랬다. 순수한 어린아이 마냥. 나는 잠시 갈등의 기로에 섰다 감동을 받아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왜 내가 떠나야 할 때, 너는 이제 와서 돌아보는 걸까. 우리의 처지를 뒤늦게 깨달은 걸까. 하지만 장작불 때문에 네 눈동자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써 눈을 외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빨리 말해주지.”
“… ….”
“빨리 말했으면 좋았을 법 했는데. 우리 사이, 이미 예전부터 끝이 나 있었어.”
“… ….”
내 말에 집중이라도 하듯이 너는 아무런 말이 없다.
“뒤늦게 사랑한다고 해도, 나는 말이야, 네가 더 이상 눈에 안 들어와.”
그게 우리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우리 둘 다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장작만 눈치 없이 계속 타고만 있었다. 그러다 나는 일 전에 봤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난다. 그 둘 꽤 행복한 사랑을 한 것 같던데. 그거는 그거대로 부럽다.
“타르탈리아.”
“… …응.”
“우리 헤어지자.”
참 그렇다. 시간이 곧 약이다. 우리들도 이 말이 해당이 될까? 우리는 이때까지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행복한 사랑을 했다. 서로 싸워도 금방 화해 했다. 이것 만으로도 행복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어짐.’이라는 명제 앞에서 무색하게도 이 ‘행복한 사랑.’이라는 것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제 헤어지면. 너는 내가 어떻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울 거야. 처음이야 무기력 하겠지. 울면서 나의 생각이 날 거야. 이것저것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날 거야. 하지만 너는 잊어야 할거야. 나도 잊을 거야. 그러고 이제 우리가 헤어지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서로가 없었던 생활로. 서로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어느 12월 겨울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나는 너를 두고 떠난다. 나의 유일 세계를 두고서. 참으로 우리 둘 밖에 안 보이던 사랑을 하고서. 하지만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머물고 있을 것이다. 그게 겨울의 이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쓸쓸한 계절이구나.
우리 말이야 참 괜찮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