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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루미 유시.png

둘 만의 몬드 여행 

"하아..."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흩어져 그의 그림자를 그렸다.

 

"토마? 무슨 일이야? 한숨을 다 쉬고. 오늘부터 휴가 받은 거 아니었어?"

 

토마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택 앞에 서 있던 토마에게 말을 건 것은 아야카였다. 

 

"아가씨. 어떻게 아신 거에요?" 

 

"저택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오빠랑 토마가 얘기하는걸 들었거든. 아, 엿들을 생각은 없었으니 혹시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

 

아야카가 조금 멋쩍은 듯 말했다. 그의 말에 토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가씨. 별로 비밀스러운 얘기도 아니었어요. 사실 가주님은 6개월 동안 푹 쉬라고 하셨는데 제 쪽에서 사정해서 결국 한 달로 합의 봤어요."

 

아야카가 놀란 듯 물었다. 

 

"그랬어? 토마는 항상 우리 야시로 봉행을 위해 힘 써주고 있잖아. 6개월 정도 푹 쉬면 좋을 텐데. 쉴 동안 몬드에 가서 이곳저곳을 여행하면 기분 전환이 되지 않을까?"

 

그의 말에 토마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남매가 이리도 똑같은 말을 한다니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어딘가의 속담이 떠오른다.

 

"하하, 가주님도 그렇고 아가씨도 그렇고. 둘이서 너무 똑같은 말을 해서 좀 안심했어요. 신경 써주신 건 고맙지만 전 정말로 괜찮아요. 오랫동안 저택을 비우는 게 좀 걱정이 돼서..."

 

 

토마의 말에 아야카는 미소 지었다. 왜 자신의 오빠가 그에게 긴 휴가를 주려고 했는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토마는 항상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적어도 휴가 동안은 토마 자신을 위해 보내주었으면  것이리라. 

 

"토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별수 없네. 하지만 나와 오빠는 토마가 야시로 봉행을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을 알고 있단 것을 꼭 잊지 말아줘."

 

그의 말에 토마도 미소 지으며 답했다.

 

"고마워요 아가씨. 긴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봐야겠어요."

 

유유히 사라지는 토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야카는 저택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벚꽃이 만발한 이나즈마의 거리. 황혼의 오렌지색이 이따금 떨어지는 벚꽃을 물들여 거리에는 봄의 정취가 느껴졌다.

 

"결국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에 와 버렸네..."

 

나루카미 섬의 99 잡화점 앞. 저녁 장을 보는 시간에 항상 그가 들르는 곳이다. 한 번 배어버린 버릇은 오렌지색으로 물든 거리와도 같아서, 쉽게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정처 없이 걷다 도착한 잡화점 앞에서 토마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토마 씨..?" 

 

익숙하고도 반가운 목소리에 토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 시간대 즈음의 거리는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묻어난다. 거리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탄식,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키미나미 요리정에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도 엿볼 수 있다. 루미네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을 눈과 귀로 쫓으며 이나즈마의 거리에 들어섰다. 

 

 

저녁 메뉴는 일반인 뿐 아니라 모험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루미네는 선계에서 기다리고 있을 작고 귀여운 가이드에게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 고민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잡화점에 다다를 무렵,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해 말을 걸었다.

 

"토마 씨..?"

 

루미네의 눈은 정확했다. 잡화점 앞에 서 있던 낯익은 뒷모습의 주인공은 토마였다. 그가 루미네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거리를 수놓았던 벚꽃잎을 싣고 둘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지나갔다. 바람에 실린 벚꽃의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둘 사이엔 짧고도 긴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여기에서 널 만날 줄은 몰랐어. 너도 저녁 메뉴를 뭐로 할지 고민 중이구나?"

 

먼저 정적을 깬 것은 토마였다. 루미네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노을빛을 담아 평소보다 더 짙은 녹색을 띄는 듯했다. 루미네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모험가에게도 저녁 메뉴는 고민거리죠. 토마 씨도 저녁 장을 보러 왔나요?"

 

토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음...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어. 사실 지금 저녁거리보다 더 고민인 게 있거든."

 

"토마 씨도 고민을 하는군요..?"

 

토마의 말이 의외라는 듯 루미네는 말꼬리를 올려버렸다.

 

"나를 고평가해주는 건 고맙지만 난 너보다  훨씬 평범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고민 한두 개 정도는 갖고 있는 법이라고."

 

토마의 말에 루미네가 웃고는 물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무슨 고민인데요? 저라도 괜찮으면 들어드릴게요."

 

조금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토마는 말을 꺼냈다.

 

"사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았거든.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야. 뭘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걷다가 정신 차려 보니 여기 앞까지 와 있더라고. 저녁 때 매번 여기서 장 보던 버릇이 나온 것 같아."

 

토마의 말에 루미네는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다가 이내 토마를 응시하고는 말했다.

 

"한 달이면 기간도 꽤 넉넉한 것 같은데 몬드에 가보는 건 어때요? 토마 씨는 고향을 그리워하셨으니까 지금이 절호의 기회에요."

 

루미네의 말에 토마는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카미사토 저택에서 똑같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덤덤했다. 아야카와 아야토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 자신이 고향을 신경 쓸 것이란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파악하고 있었을 터.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건 그리 쑥스럽진 않았다. 토마에게 카미사토 저택은 깊은 정이 든 곳이지만 동시에 직장이기도 해서, 고향에 갔다 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인 줄은 알지만 기분 자체는 덤덤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미네에게 그 말을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에게 고향에 대해서 종종 말해왔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언젠가 몬드에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직접 말로 들으면 꽤나 새롭고 마음 어딘가에서 쑥스러움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혼자 가기 뭣하면 저랑 같이 갈래요? 같이 가면 분명 더 즐거울 거에요."

 

루미네의 말에 토마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루미네와 같이 가보고 싶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당황스럽고도 어딘가 망설여지는 마음이 생겨났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쁨이란 것이겠지. 토마는 고민할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너랑 같이 몬드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그럼 같이 가자. 너랑 같이 가면 분명 최고로 즐거운 휴가가 될 거야."

 

토마의 말에 루미네가 온화한 웃음으로 답했다.

 

"좋아요. 그럼 바로 내일 출발하는 거로 해요."

 

"바로 내일 가도 되겠어? 더 준비하고 가는 게 좋지 않아?"

 

같이 가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출발은 바로 내일이라니, 토마는 최근 있어야 했던 모든  놀라운 일들을 하루에 몰아서 겪는 듯했다. 루미네는 어느새 뒤를 돌아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틈에 샀는지 손에는 갖가지 식자재가 들려있다. 토마의 물음에 뒤를 돌아본 루미네가 웃으며 답했다.

 

"원래 이런 건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거든요. 몬드에 가서 하고 싶은 걸 꼭 생각해봐요. 뭐든 같이 할게요."

 

토마가 대답할 틈도 없이 루미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예의 그 선계일 것이다. 잡화점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토마는 어느새 황혼을 지나 밤의 색이 드리운 거리를 보며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몬드를 떠난 지 꽤 오래 전인 것 같은데 정말 변한 게 없구나."

 

토마와 함께 몬드에 도착한 루미네는 몬드성 문 앞에 와 있었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나무들을 스치며 작은 음악회를 열려는 듯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건 생각해 놨어요?"

 

토마를 보며 묻는 루미네에게 그가 답했다.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진 것도 있어서 제대로 떠오르지 않더라고... 몬드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찾으러 떠난 이후로 처음 와보는 거라 혹시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니까 뭘 해야 될지 감이 안 잡혔다고나 할까...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나랑 같이 계속 다녀주지 않을래? 어렸을 적에 내가 자주 갔던 곳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뭔가 떠오를지도 몰라."

 

루미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답했다.

 

"좋아요. 어차피 토마씨랑 계속 다닐 예정이었으니까요."

 

루미네의 대답에 토마는 봄의 햇살과도 닮은 밝은 웃음을 띄었다.

 

"그럼 디어 헌터에 짐이라도 맡겨놓고 가요. 이대로 다니면 제대로 즐기지 못할 거에요."

 

토마의 배낭을 보며 루미네가 말했다.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전부 몬드에서 보낼 작정인지,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가져온 짐의 크기가 꽤 컸다. 

 

"디어 헌터라면 허니캐럿그릴이 유명한 그 음식점이지? 짐을 맡긴다니, 그런 거도 가능해?"

 

"전 몬드에서 명예기사라고 불리고 있거든요."

 

루미네가 대답에는 어딘가 의기양양함이 묻어났다. 둘은 몬드성 문을 지나  디어 헌터를 향해 걸어갔다.

 

 

 

 

 

 

 

 

자유의 도시 몬드도 오렌지색의 노을 앞에선 칠하는 대로 물들여지는 흰 도화지에 불과하다. 황혼이 몬드성을 반쯤 채울 무렵 둘은 디어 헌터로 향했다. 분명 오전부터 몬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을 터라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을 법했지만 둘은 지치긴 커녕 멀쩡해서, 오히려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본다면 멋진 소풍을 즐기고 왔으리라고 짐작할 것이다. 루미네는 머리 위에 씌워진 세실리아 꽃 화관을 만지작거리며 디어헌터 앞에 놓인 식탁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토마가 제안한 이른바 '어렸을 적 자주 갔던 장소 탐색'의 코스는 모험가 길드에서 이따금 주최하는 탐색훈련, 그것도 조금 하드한 난이도의 그것과 비스무리한 느낌이었다. 분명 루미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모험가가 아니라면 누구나 지쳤을 법한 코스였다. 먼저 몬드성 앞의 시드르 호수를 지나 울프영지에 들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그 후에는 바람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밑에 앉아서 쉬었다. 오후에는 별을 따는 절벽을 돌아다니며 토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절벽에 앉아 쉬던 중 토마가 루미네에게 준 것이 바로 화관이었다. 세실리아 꽃으로 수놓아진 화관은 기본적으로 흰색을 띄어 심심해 보일 수도 있었으나, 이를 거부하듯 풍차국화의 붉은 색이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몬드성의 노을빛에 화관이 물들자  불타오르는 마노가 박힌 왕관처럼 보인다.

 

"내가 먼저 제안하긴 했지만, 여기저기 끌고 다닌 것 같아서 미안해. 좀 힘들었지?"

 

"전 괜찮아요. 오히려 즐거웠는걸요."

 

주문한 요리가 차례차례 식탁에 차려지자 루미네가 말을 이었다.

 

"덕분에 토마 씨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상상이 가서요."

 

답지 않게 말이 없어진 토마를 두고 루미네는 혼자서 말을 계속했다.

 

"토마 씨는 저한테 몬드에 대해서 종종 말해줬잖아요. 그때마다 몬드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냈을지 내심 궁금했거든요. 오늘을 계기로 알았어요. 분명 토마 씨의 일상은 모험이 가득하고 생기가 넘치는, 봄의 햇살 같았을 거에요."

 

그런 말을 하는 루미네의 눈동자에 토마의 모습이 담겼다. 그의 눈에 담긴 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분명 조금 놀라면서도 아주 행복이 묻어나는, 그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하고 싶은 게 생각 났나요?"

 

허니 캐럿 그릴을 한 입 베어 먹은 루미네가 물었다. 토마는 주문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루미네를 바라보다 평소와의 그와는 다르게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사실... 너한테 거짓말을 한 게 있어. 먼저 사과할게. 내가 오전에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었지? 그건 거짓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난 오늘 하고 싶은 것들을 거의 다 이뤘어. 어릴 적에 놀았던 곳을 가보고. 디어 헌터에서 식사를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야."

 

토마의 말에 루미네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미소 짓고는 말했다.

 

"그건 잘됐네요. 그럼 왜 처음 물어봤을 때 얘기하지 않은 건가요?"

 

루미네에게 토마를 탓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토마는 괜스레 시선을 옆으로 돌리다가 이내 루미네의 눈을 직시하고는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전부 네가 있어야 했거든. 너랑 같이 하면 뭐든 즐거워. 어릴 적 장소에 가서 놀거나 디어 헌터에서 밥을 먹는 것. 전부 네가 옆에 있었으면 했어. 그리고..."

 

토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의 올곧은 시선은 루미네를 향해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갔던 장소들을 너랑 같이 가면 나 혼자만의 추억이 너와 함께한 추억으로 바뀌잖아."

 

루미네의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동그래졌다. 그러고는 이내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된 건 루미네에게 큰 행운이자 여행의 작은 보람일 것이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 시간을 마칠 무렵에는 밤의 향기가 몬드를 가득 채웠다. 밤 기온을 먹은 바람은 시원한 풀내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루미네는 몬드 성문 앞에 와 있었다. 토마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이 뭐에요?"

 

루미네가 묻자 토마는 손에 들고 있던 큰 가방을 땅에 내려 놓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토마의 키보다 배는 커 보이는 가방이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은 누가 봐도 여행용 가방이라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의 정체는 대부분의 일을 무덤덤하게 넘기는 루미네 역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마가 가방을 열고 꺼낸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건 묘목이죠...?"

 

루미네의 물음에 토마가 웃으며 답했다.

 

"맞아. 벚꽃나무 묘목이야. 이나즈마에서 직접 가져왔어. 내가 몬드에 와서 하고 싶었던 마지막 일은 이곳에 벚꽃나무를 심는 거야. 여기에 오기 전에 미리 페보니우스 기사단 측에 서신도 보냈거든. 다행히 심어도 된다고 허락해줘서 심기만 하면 되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토마의 말을 들은 루미네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그 부분은 토마 씨라면 잘 해결할 테니까 신경 쓰이진 않지만, 어째서 벚꽃나무를 심고 싶은 건가요?"

 

토마를 보는 루미네의 눈동자에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이 담겼다. 달과 짜여진 비단 같은 은하수. 그 앞에선 토마를 보고 있자, 살랑이는 바람에 조금씩 흩날리는 그의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이 밤하늘을 자수처럼 수놓았다.

 

"몬드에는 벚꽃나무가 없잖아. 몬드 사람들에게 벚꽃나무를 보여주고 싶어. 이나즈마의 봄이라고 하면 역시 나루카미 섬의 벚꽃나무니까. 그리고... 내 고향 사람들에게 난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 내가 이나즈마로 떠날 때 날 알던 사람들이 많이 배웅해줬거든. 물론 그 사람들이 지금도 날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

 

토마의 말에 루미네가 말없이 웃었다. 토마의 생각은 이따금 이 이방인의 생각에서 벗어나 있다. 이나즈마에 한해서는 토마나 루미네와 같은 이방인이었다. 같은 이방인임에도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이 또한 여행의 별미라고, 루미네는 생각했다. 미소를 짓던 루미네가 눈을 떠보면 싱그러운 녹음을 닮은 눈동자가 자신을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그의 눈동자에는 또 한명의 이방인이 담겨있을 것이다. 달과 은하수를 등지고 서 있는 루미네를 토마는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계속 바라보았다. 서로를 응시하던 루미네가 이내 벚꽃나무 묘목에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분명 기억할 거에요. 시간이 지나도 인연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런 루미네를 지긋이 바라보다 토마가 말했다.

 

"고마워 루미네. 역시 너랑 몬드에 와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없었다면 벚꽃나무를 심을 생각은 못 했을 거야. 어쩌면 한 달 동안 뭘 해야 할지 고민했을지도 모르지. 설령 혼자 몬드에 왔다고 해도 뭘 해야 할지도 몰랐을 거야. 네 덕분에 이번 휴가는 정말 의미 있는 휴가가 될 수 있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도 토마씨의 이런 저런 면을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와요. 이번엔 제가 가이드가 되어줄게요."

 

웃고 있는 루미네를 바라보던 토마는 그 모습을 이내 웃으며 답했다.

 

"너한테 가이드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기대할게."

 

 

이윽고 루미네는 고개를 숙여 토마와 함께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둘이서 묘목을 심으니 생각보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원관리에는 도가 턴 토마였기에 혼자 해도 괜찮다며 말렸지만 루미네는 모험가에게 새로운 경험은 중요하다며 토마를 도와 묘목에 손을 가져간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응원이라도 하듯 밤하늘의 달이 한껏 빛을 보냈다. 달빛을 받은 화관은 이 밤의 비밀스럽고도 다정한 계획을 엿보듯이 은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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